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연준(Fed) 의장이 금리 이야기 대신 ‘건물 리모델링’과 ‘엘리베이터 높이’를 해명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임.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본질을 뜯어봄.
- 1951년 3월,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‘재무부-연준 협정(Treasury–Fed Accord)’이라는 역사적인 합의를 맺음.
- 그 전까지 연준은 전쟁 비용 조달(2차대전 국채 관리)을 위해 국채 금리를 강제로 ‘고정(peg)’해야 했고, 사실상 재무부가 시키는 대로 끌려다니는 처지였음.
- 이 합의를 계기로 연준은 정부의 빚 관리에서 손을 떼고, 통화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얻음. 현대 중앙은행 독립성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사건임.
-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다가오면 표를 얻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음.
- 실제로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마틴 의장을 텍사스 별장으로 불러 압박했고, 닉슨 대통령은 1971~72년 대선을 앞두고 번스 의장에게 돈을 풀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음.
- 그래도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마음대로 ‘해임’하기는 어려웠음. 연준 이사(총재)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되며, 해임하려면 반드시 ‘정당한 법적 사유(For Cause)’가 있어야 하기 때문임.
- 단순히 “금리 정책이 내 맘에 안 든다”는 이유는 법적으로 ‘정당한 사유’가 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임(물론 의장직만 박탈할 수 있는지는 법적 논란이 있음).
- 그런데 2025년 하반기에서 2026년 1월 사이,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아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 ‘해임 사유(For Cause)’를 만들어내기 시작함.
- 그 구실은 금리가 아니라, 엉뚱하게도 ‘연준 본부 리모델링 공사비’였음.
- 워싱턴 DC에 있는 연준 본부 ‘에클스 빌딩’과 바로 옆 ‘1951 Constitution Ave(옛 공공보건국)’ 건물은 현재 대대적인 증축 및 리모델링 공사 중임.
- 두 건물 다 1930년대에 지어진 아주 낡은 건물들임(에클스 빌딩 1937년, 옆 건물 1931~33년 완공).
- 이 공사는 2017년 연준 이사회에서 승인되었고, 정상적인 인허가와 설계를 거쳐 공사가 시작됐음.
- 문제는 공사비가 예상보다 크게 불어났다는 점임. 2024년 기준 약 18.8억 달러로 예상했던 비용이 2025년 중반엔 약 24.6억 달러로 뛰었고, 행정부는 ‘7억 달러 이상 초과됐다’고 강조함.
-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“31억 달러짜리 초호화 공사”라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함(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부르는 액수가 달라짐).
- 여기서 트럼프의 공격 포인트는 아주 구체적이고 의도가 뻔히 보임.
- “파월 의장이 세금을 낭비해 호화 시설을 짓고, VIP 전용 엘리베이터와 전용 공간을 만들고 있다”는 프레임을 씌운 것임.
- 파월 의장은 2025년 7월 17일, 예산관리국(OMB) 국장 러셀 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조목조목 반박함.
- 핵심은 이렇음. “VIP 다이닝룸 계획 없다”, “VIP 전용 엘리베이터도 없다”, “문제가 된 엘리베이터는 바닥 높이 차이를 없애기 위해 18인치(약 45cm) 조정하는 장애인 접근성(ADA) 공사일 뿐이다.”
-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연준 의장이 고작 45cm 높이 때문에 ‘해명서’를 써야 하는, 상황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임.
- 트럼프 측이 진짜 노리는 건 공사비 몇 푼이 아님.
- 파월이 2025년 6월 상원 청문회에서 리모델링 관련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‘허위 진술(위증)’로 엮으려는 게 핵심임.
- 만약 ‘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’는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고 위법이 확정되면, 그때부터는 대통령이 파월을 자를 수 있는 ‘정당한 해임 사유(For Cause)’가 생기기 때문임.
- 실제로 2025년 7월 공화당의 안나 폴리나 루나 의원이 파월에 대한 형사 수사를 요청했고, 이후 법무부(DOJ) 수사가 실제로 진행됨.
- 2026년 1월 11일, 파월은 성명을 통해 “대배심 소환장(법원 출석 요구)”을 받았다고 밝힘. 현직 연준 의장이 형사 처벌 위협을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진 것임.
- 시장은 즉각 충격을 받았음.
- 소식이 퍼지자 달러 가치(DXY)는 99.011로 떨어졌고, 금값은 온스당 4,600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상 최고가를 찍음. (2026-01-12 기준)
- 시장이 겁내는 건 ‘공사비 낭비’가 아님. 연준이 정치 외풍에 휘둘려 ‘독립성’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자산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것임.
- 여기에 진짜 아이러니한 사실이 하나 숨어 있음.
- 공사비가 뛴 이유는 단순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, 낡은 건물을 뜯어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(석면 제거, 지하 공사 난관, 문화재 보존, 보안 설비 등)가 터져 나왔기 때문임.
- 게다가 철강 같은 자재 가격이 오른 원인 중 하나는 2018년 트럼프가 시작한 철강·알루미늄 관세 폭탄 때문이기도 함.
- 결국 ‘각종 비용 상승(일부는 트럼프 정책 탓)’으로 공사비가 올랐는데, 그걸 핑계로 연준 의장을 자르려는 상황이 된 셈임.
- 연준은 현재 적자가 쌓여 장부상 손실(이연자산)이 2,420억 달러(2025년 9월 기준)나 되는 상태라, “돈도 못 버는 주제에 펑펑 쓴다”는 비난에 반박하기 어려운 처지임.
- 결론적으로 이 싸움은 ‘건축비가 적절하냐’의 문제가 아님.
- 금리 정책으로는 자를 명분이 없으니, ‘공사비 영수증’을 털어서라도 해임 권한을 손에 넣으려는 우회 공격임.
- 고작 18인치 엘리베이터 공사가 나비효과를 일으켜, 연준 의장의 목을 겨누고 있음.
한줄 코멘트. 금리로 못 흔들면 영수증으로 흔드는 법임. 트럼프에게 ‘독립성’이란 리모델링 대상일 뿐임.